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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론] ‘암과 전쟁’ 선포 50주년… 그러나 암은 전쟁 대상이 아니다
작성자 : 대한암예방학회 등록일 : 2021-12-23 조회수 :230
작성자 대한암예방학회 등록일 2021-12-23 조회수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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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암과 전쟁’ 선포 50주년… 그러나 암은 전쟁 대상이 아니다

 

50년 전인 1971년, 크리스마스를 바로 앞둔 오늘(23일), 미국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국가 암퇴치법에 서명하며, 암과 전쟁을 선포했다. 당시 닉슨은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는 1976년까지 암을 퇴치하겠노라는 핑크빛 약속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암 사망률은 5년 후에도 전쟁을 선포한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닉슨은 어떻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당시 미국은 암스트롱을 포함한 우주비행사 3명을 아폴로 11호에 실어 달에 보냄으로써 소련과 벌이던 우주 전쟁에서 자존심을 세웠다. 그런 노력과 열정이라면 암도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닉슨은 물론 미국민 대다수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암 전쟁 선포 50년이 지났다. 그동안 첨단 방사선 치료가 나오고, 정교한 로봇 수술이 등장하고, 자기 면역을 키워 암세포를 잡는 면역 항암제도 나왔다. 그 덕에 암 생존율은 60% 이상 높아졌다. 그렇지만 암은 아직 정복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암과 싸워나갈 것인가를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암과 전쟁’이란 용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암에 적군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이와 마주한 환자를 마치 지휘관(의사)의 명령과 지시를 받는 병사로 여기는 이러한 비유는 암에 대처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종 암 환자들은 암을 상대한 전쟁에서 기필코 이기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과연 이 말이 암 환자들에게 진정한 격려와 희망을 줄 것으로 생각하는지. 암을 극복한 환자를 영웅으로 받든다면, 그러지 못할 때는 암 전쟁에서 제대로 싸울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또한 항암 치료의 고통이나 수술 후유증을 고려하여 이를 포기하는 환자들은 암의 공격에 무장해제되어 백기를 든 패잔병이란 말인가. 이러한 군사적 은유는 암이라는 적을 찾아내고 섬멸하기 위해 불필요한 진단과 과도한 치료를 유발할 수도 있으며, 암 치료에 진전이 없는 환자들에게는 패자라는 자책감과 함께 자칫 심리적 압박과 좌절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간 우리는 줄곧 암을 뿌리 뽑는다는 완치(cure)에 주력하였으나 실제 그 효과는 미미하였다. 암을 완전히 퇴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은 암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이는 원천적으로 암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뿐만 아니라 암 환자를 관리하고 치료하는 데 소비되는 막대한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접근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암을 정복할 수 있을까? 적어도 우리 후손만큼은 암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려면 좀 더 전략을 치밀히 수립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 2년이 지난 작금의 상황은 새로운 변종이 출현함으로써 전 세계를 또다시 혼돈과 불안에 휩싸이게 하고 있다. 암세포 또한 돌연변이를 통해 항암제에 내성을 얻고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이를 인지하고 앞으로는 암과 전쟁한다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암세포와 공존을 유지하면서 가능한 한 암 발생을 낮추는 예방에 더욱 관심을 둬야 한다. 여기에 국가와 개인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단순히 암세포를 때려잡겠다는 고전적 전략만으로는 결코 암을 퇴치할 수 없다. 암세포도 우리 몸의 일부다. 이를 이단아 취급하며 함부로 대하면 암세포가 더욱 포악해져 오히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결코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어쩌면 암은 영원히 지구 상에서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암을 무조건 정복할 상대로만 대할 것이 아니고 우리 몸이라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면서 아무쪼록 말썽 부리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도록 잘 관리하고 다스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서영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 前 대한암예방학회 회장

출처 : 조선일보 2021.12.23 ([시론] ‘암과 전쟁’ 선포 50주년… 그러나 암은 전쟁 대상이 아니다 - 조선일보 (chosun.com))